지난해 충북 음성군에서는 중요한 논의 하나가 진행됐습니다. 바로 ‘생활임금조례’ 제정. 생활임금이란 국가에서 정한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방정부가 별도로 정해 공공부문 노동자에게 적용하는 제도입니다.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생활임금을 보장해, 지역 내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라, 지역이 먼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체제전환의 시도였던 셈이죠.
생활임금조례는 공공부문 노동자 개개인의 생계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생활임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삶을 최소한으로 보장할 수 있는가, 또 보장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은 많은 이들이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돌봄과 먹거리, 주거 같은 기본권조차 위협받는 현실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기후위기, 불평등, 돌봄의 붕괴 같은 전 지구적 문제들이 지역 일상 속에 구체적으로 드러날 때, 그에 대응하는 작은 실천에서부터 체제는 흔들리고 변화의 균열은 나타납니다. 음성군의 생활임금조례는 바로 그런 시도였습니다.
군 행정부나 군의회를 통해서가 아닌 주민발안제도를 통해 음성군 주민 2,356명이 직접 조례 발의에 찬성 서명을 해서 조례를 지역 주민들의 이름으로 발의한 것도 그런 인식의 발로였습니다. 군 단위에서는 최초로 주민발안제도를 통해 조례안을 발의했지만 음성군의회의 국민의힘 소속 군의원들은 지역 주민들의 바람이 담긴 생활임금조례를 부결시켰습니다. 그것도 자신들이 공동발의자로 이름 올린 조례안에 반대표를 행사했습니다.
결국 생활임금조례는 제정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면담을 통해 항의하러 군의회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군의회 측과 잠시 충돌이 있자, 군의회는 항의방문한 이들을 모두 형사고발했습니다. 저 역시도 최근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지요. 지역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좀 더 나은 삶을 보장하자는 지역 주민들의 제안은 그렇게 좌절됐습니다. 군민을 위한다는 군의원들의 손에 의해서 말입니다. 이러한 군의회의 망동에 지역주민들은 군의회를 규탄하는 현수막을 걸고 생활임금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로 열었습니다.
음성군 예산 중 세계잉여금, 즉 쓰지 않고 곳간에 남긴 여윳돈은 한 해 600억 원이 넘습니다. 생활임금조례 시행시 드는 비용은 연 10억 원이 채 안 되는 것으로 계산됩니다. 수백억 원의 예산이 남아도 재정 문제를 거론하는 모습에서 과연 우리의 지방정치는 무엇을 중심가치에 놓고 정치를 하는지 씁쓸해집니다.
음성군은 충북혁신도시와 대규모 산업단지를 가진 도시입니다. 다양한 계층과 노동자가 살아가는 곳이자 전국 지자체 중 이주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생활임금은 '복지'가 아니라 '전환'의 시작이 될 수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가능한 제안입니다. 지역의 상상력은 중앙정부를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마을 단위에서, 조례 하나에서, 우리는 다른 삶의 구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생활임금조례가 불발됐다고 해서 체제전환의 시도까지 멈춰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경험을 토대로 다음 질문과 시도를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지역에서 시작하는 진짜 체제전환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단 생활임금뿐만 아니라 더 나은 일상과 공동체를 위한 모든 변화의 움직임이 풀뿌리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 체제전환운동의 첫걸음이 아닐까요? 당장은 생활임금조례 제정을 목표로 하지만 더 나아가 음성군 전반의 체제전환과 그를 통해 지역의 모든 존재가 존엄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여러분과 함께 연대하고 고민하겠습니다!